전통백과
- 조선 중종 32년(1537) 영의정 권철의 막내아들로 태아나 늦은 나이인 46세(1582년,선조 15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광주목사로 임명되었고 임진왜란(1592~1598)중 전주성을 점령하여 호남지방을 확보하려는 왜군을 1592년 음력 7월8일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 사이의 이치고개에서 물리쳤다,
이치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거듭 패배하던 조선군이 처음으로 육지에서 크게 승리한 전투였다. 이승리로 전라도 순찰사가 되었고 이후 1만 명의 군사를 모집해 경기도 오산 독산성에서도 승리하여 왜군의 호남·호서지방 진격을 막아냈다.(독산성 싸움), 이어 한양을 되찾기 위해 한양으로 진격해 1593년 음력 2월 행주산성에 배수진을 치고 왜군 3만명을 3.000명의 관군, 의병, 승군,여성들과 조선 첨단무기인 신기전, 총통은 물론 활과 돌로 대적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이 승리로 권율은 조선의 전 군을 지휘하는 도원수가 되었다.
[영정개요]
ㅇ 지정명칭 : 권율(權慄) 표준영정 (120cm*200cm)
ㅇ 지정호수 : 102호
ㅇ 제작기관 : 경기도 고양시
ㅇ 작 가 : 권오창
ㅇ 소 장 처 : 행주산성 충장사
ㅇ 지 정 일:2024
- 선현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선현
- 용모 안동 권씨 종중 100여 명 골상 참조 장군 50대의 모습 추사(追寫)
- 복식 17세기 선무 1등 공신상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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