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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간 지역의 투박한 요깃거리

 

 

태백, 정선, 영월 등 강원도 산간 내륙 지방의 음식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음식은 물론이려니와 다른 여타의 지역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산은 높고, 골은 깊어 논농사도, 밭농사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높고 험한 산골짜기 사이에서 불을 놓아 땅을 부쳐 먹는 화전민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 옥수수, 콩을 주로 심었다. 수확한 알갱이들을 잘 갈무리해두고 겨우내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더해 좋은 요깃거리들을 만들어내었다.


 

강원도 토박이들에게 밥심은 다른 지역 얘기, 누릴 수 없는 사치다. 쌀이 없는 설움을 희한한 방법으로 달래야 했던 그들은 메밀 알곡을 메밀쌀로, 옥수수 알갱이를 옥수수쌀로 불렀다. 껍질을 벗겨 먹기 좋게 가공한 것들을 실제로 쌀처럼 밥을 지어 먹거나 죽을 쑤어 먹었던 것이다. 강원도 산간 지역의 음식을 보면, 밥에 곁들이는 국이나 반찬의 개념보다는 한 끼 잘 넘길 수 있는 대체식, 혹은 요깃거리의 형태를 많이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옛날, 구황식으로 불렸던 음식들인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세상은 바뀌었고, 이제 사람들은 너무 잘 먹어 고민이요, 너무 많이 먹어 힘들다. 그 옛날 양을 늘리기 위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먹었던 늘임 음식과 요깃거리들이 성인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좋은 대안으로 떠오르는 요즘, 강원도 영월의 깊은 산중에서 귀한 강원도 땟거리들을 고루 맛볼 수 있었다.

 

 

 

약사이자 자연식 연구가인 엄성희 선생은 충청도 제천 출신으로 강원도 영월에서 수피움이라는 자연치유센터를 운영하며 강원도 토속음식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껄껄하고 투박한 메밀, 옥수수, 감자, 콩가루 등이 그의 손을 거쳐 반갑고 귀한 건강음식으로 거듭 난다. 손으로 막 쥐어 빚는 강원도 만두가 대표적이다. 

 

 

 

 

고향이 충북 제천이니 영월에서 그리 멀지 않아요. 음식도 거의 같고요.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좋아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한 적은 없었어요. 어머니 솜씨가 좋으셨던 데다 고기 음식도 많이 먹었지요. 그렇다 해도 투박하고 소박한 음식 역시 많이 해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먹었던 음식들을 강원도 영월에 와서 다시 만나니 참 반갑더군요. 자연식과 토속음식을 연구하는 관점에서 다시 보니 하나하나 귀하지 않은 음식이 없네요.

 

 

 

 

 

 

어린 시절, 별미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은 강냉이 밥이었다고 한다. 강냉이를 타개서(쪼개서)물에 불려 쌀과 섞어 밥을 지었던 것. 강원도 찰옥수수 껍질을 벗긴 것을 옥수수쌀이라고 부르는데 이걸 미리 한 번 삶아 준비하고 역시 한 번 삶아둔 팥과 콩을 더해 푹 무르도록 끓인 음식이 유독 입맛을 당긴다고. 다른 지역에서는 범벅이라고도 부르고 풀떼기죽이라고도 부르는 음식이다. 원래는 소다를 넣어 삶았다고 한다. 그래야 빨리 익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한시간 이상 뭉근학[ 끓일 음식을 20분이면 다 익으니 손쉬워 좋았을 수는 있겠으나 우선 들쩍지근한 맛이 나 좋지 않고, 건강에도 이로울 턱이 없으니 지금은 당연히 소다는 넣지 않는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양조장을 운영하셨어요. 거기서 나오는 술지게미를 동네 사람들이 얻어다가 이 음식에 넣어 끓여먹는 걸 많이 봤지요. 우리 집에서도 가끔은 별미로 술지게미를 넣어 끓였는데 단맛을 올리려면 그 방법이 제일 좋았던 거지요. 설탕은 워낙 귀하니까요. 사카린도 귀한던 시절이니 생활이 곤궁한 사람들에게 양도 늘여주고 단맛도 내주는 술지게미는 참 고마운 식재료였을 거예요

 

 

 


강원도나 충청도 음식의 특징 중에 하나는 콩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콩갱이가 대표적인 산골 음식이다. 시래기에 쌀, 메밀쌀, 감자 등을 더해 끓이다가 불려서 갈은 콩물을 가만히 부어 끓인 음식이다. 소금으로 간을 해야 깔끔한데 입맛에 따라 국간장을 조금 치기도 한다.

 

 

 

 

 

제가 어릴 적에는 콩개이라고 부르던 음식입니다.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먹었어요. 콩만 넣어 끓인 콩죽인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면 콩갱이는 그야말로 거칠기 이루말할 수 없는 늘임 음식이지요. 콩 한줌 불려 갈면 다른 재료들을 섞어 대여섯 식구가 먹었으니까요. 내륙 지방 사람들이 콩가루를 많이 먹어요. 바닷가 사람들은 생선이라도 잡아 단백질 섭취를 하지만 내륙에서는 그럴 형편이 못되니까요. 강원도처럼 땅이 박한 지역에서 콩이 잘되거든요. 된장을 슴슴하게 풀어 넣고 끓인 냉이국에 콩가루를 조금 풀어 넣어 엉기게 끓여도 맛있고,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서 끓이다가 콩가루를 살짝 풀어 넣어 끓여도 참 맛있었지요.

 

 

 

 

강원도 토속음식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첫손에 꼽는 음식이 있다. 바로 올챙이국수다. 옥수수를 갈아서 반죽한 다음 구멍을 뚫은 바가지를 통해 내려 익힌 국수가 바로 올챙이국수다. 따로 육수를 낼 것도 없이 양념간장 쳐서 후르륵 들이마시듯 먹는 음식으로 한껏 기대하고 대했다가는 밍밍한 맛에 질려 숟가락을 놓기 십상인 음식. 기껏해야 손가락 길이나 될까? 올챙이 모양으로 생겼대서 올챙이국수지만 먹을 때 콧등을 치고 입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해서 콧등치기국수라고도 불린다.

 

 

시래기, 감자, 콩물 등을 섞어 끓인 콩갱이. 구수한 한끼 음식이다.

껍질을 벗긴 강원도 찰옥수수와 팥, 콩 등을 넣어 뭉근하게 끓인 다음 설탕을 조금 넣거나 꿀을 넣어 먹으면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

차게 식혀 먹으면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것이 색다른 디저트 역할도 한다. 냉이국과 김치국에 콩가루를 넣어 영양과 맛을 돋운 강원도의 토속음식.  

 

 

 

 

 

엄성희 선생이 만들어낸 국수는 그와는 조금 달랐다. 옥수수대신 메밀로 반죽해 썰어낸 국수에 감자옹심이를 넣고 끓인 것으로 토박이들은 꼴뚜국수라고 부른다고. 감자옹심이는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꼭 짜 건더기를 따로 둔 다음 나머지 물을 그대로 두어 떠오르는 윗물을 따라버리고 남는 녹말을 건더기와 섞어 반죽해 수제비처럼 떠 넣는 음식이다. 꼴뚜국수는 멸치육수에 메밀국수를 넣어 끓이다가 감자옹심이를 넣어 마무리한 것. 툭툭 끊기는 메밀국수와 쫀뜩쫀득한 감자옹심이의 대조적인 식감이 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음식이기도 하다. 감자를 갈아서 밀가루와 섞어 묽게 흐르는 반죽을 만들어두고 늙은 호박채와 감자채를 더해 부친 전 역시, 익숙한 듯 색다른 음식. 늙은 호박 특유의 들큼한 맛에 담백한 감자채가 더해진 것으로 물을 전혀 섞지 않고 간 감자에서 나온 수분만으로 반죽해야 맛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영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겨울의 토속음식은 역시 만두. 집집마다 조금씩 만드는 방법도 달라서 거무죽죽한 메밀가루를 반죽해 피를 만드는 경우도 있고 밀가루를 반죽해 사용하기도 한다. 메밀가루로 만두피를 만들다보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반죽이 말라 쩍쩍 갈라지게 마련이다. 워낙 찰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 투박한 반죽을 밀어 동그랗게 모양 살려 펼치고 복잡한 재료 없이 간단하게 섞은 김치소를 넣는다. 묵은 갓김치를 씻어 종종 썬 것이나 묵나물 불려 볶은 것을 썰어 넣어 만들기도 하는 식이다. 특히 묵나물로만 만두소를 만든 것을 따로 채만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채소만 넣어 만들었다는 뜻이다.

 

 

 

 

영월 사람들은 김치만두를 정말 많이 만들어 먹어요. 돼지고기나 숙주, 두부 같은 재료들은 겨우 시늉이나 할 정도로 적게 넣는데 그저 속 재료가 엉길 정도로만 넣는다고 보면 됩니다. 김장김치가 잘 익어 맛이 들면 꺼내서 한꺼번에 수백 개씩 빚어 냉장고에 얼려두고 겨우내 먹는 거지요.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에게도 많이들 보내고요. 빚을 때는 애써 모양을 내려고 하지 않고 그저 손으로 꾹꾹 눌러 붙여요. 각각의 만두를 두고 보면 참 못생겼는데 수북하게 쌓아두고 보면 또 묘하게 정감이 가는 음식이에요.

 

 

 

 

맑게 우린 멸치육수에 메밀국수, 감자 옹심이를 넣은 꼴뚜국수. 들큼한 맛이 나는 늙은 호박채전을 곁들여 먹으면 좋다.

대추살을 발라내고 남은 씨를 폭폭 끓여 차를 만들어 겨우내 먹는 것도 산골살이의 즐거움이 된다.

 

 

 

 

산에서 나는 나물거리며 산야초를 잘 갈무리해두면 사철 장아찌와 묵나물을 마련할 수 있다. 엄성희 선생의 부엌에서 내온 장아찌는 무, 도라지, 마늘쫑, 오이지, 케일, 더덕, 뽕잎, 곰취 등을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등으로 맛을 낸 것들. 묵나물 역시 질경이, 곤드레, 취나물, 곰취, 어수리, 호박오가리, 무나물 등을 조물조물 손질해 볶아냈다. 특이한 것은 여름 한철 국거리로나 쓰는 줄 알았던 근대를 묵나물로 말려 먹을 수 있다는 것. 어수리 역시 씹을수록 고소해 간수해두고 먹으면 좋을 식품이다.

 

 

 

 

 

맛있기로는 어수리 나물이 제일입니다. 질경이는 이뇨작용을 하니 겨울철에 더 고마운 나물이고요. 친한 친구가 시금치 농사를 짓고 있는데 미처 다 거둬먹지 못할 정도로 양이 많다보니 말려볼 생각을 했나 봐요. 그걸 나중에 불려서 볶은 것을 줬는데 시금치 묵나물이 의외로 맛이 있었어요. 그 기억을 떠올려 근대를 말렸더니 역시 맛이 좋더라고요.

 


 



궁리를 하면 길이 보이는 법이다. 강원도 산골음식이 특히 그렇다. 척박한 땅을 원망해보았자 주린 배에 도움 될 것 무엇이랴. 적게 먹고, 헐하게 먹는 것이 유행 아닌 유행이 된 세상. 강원도 토속음식이야말로 좋은 대안이다. 강원도다운 밥상. 공부하고, 연구해볼 일이다

 

 

 

 아홉가지 묵나물. 매일의 밥상을 정월 보름 같이만 먹으면 무엇이 걱정일까. 최소한의 양념에 좋은 기름 조금 두르고 조물조물 볶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짜지 않게 담가 조금씩 곁들이는 장아찌 또한 검박한 산골음식에 좋은 동무처럼 곁들일 수 있어 고맙다





글 : 이명아(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교육원)
사진 · 영상 : 박명화
영상 편집 : 김초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