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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의 한식읽기] 13. 닭은 억울하다

닭은 억울하다.

닭의 ‘억울한 오해’를 푸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흔히 “꿩 대신 닭”이라고 말한다. 꿩이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이 닭을 먹는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숨어 있다. 꿩고기가 닭고기보다 낫다는 평가도 숨어 있다. 진짜 그럴까? 닭보다 꿩이 맛있을까? 아니다. 오해다. 꿩고기가 닭고기보다 낫다는 통계, 자료가 있을 리도 없다. 꿩고기 애호가들, 호사가들은 꿩고기가 낫다고 떠벌릴지 모르지만 그렇진 않다. 그렇게 떠드는 이도 드물다. 꿩고기는 거의 잊은 고기다. 꿩고기를 자주 먹어보고, 그 맛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그런데 왜 꿩 대신 닭일까?
 

꿩 대신 닭. 공짜로 구할 수 있는 꿩 대신 아깝게 돈을 지불해야 하는 닭을 의미한다. 

꿩이나 닭이나 모두 산란, 부화가 쉬운 날짐승이다. 알을 많이 낳는다. 알을 구해서 부화시키기 어렵지 않다. 수익률의 문제이지 꿩을 사육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런데 전국에 삼계탕, 닭볶음탕, 백숙집은 지천인데 꿩고기를 파는 집은 드물다. 왜 야생 꿩, 사육 꿩을 파는 집이 드물까? 간단하다. 수요가 많지 않다. 한두 번 먹고 나면 그만이다. 시골길에 꿩고기 파는 곳은 가끔 있지만 그뿐이다. 산업화가 어렵다. 꿩고기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악순환이다. 파는 곳이 많지 않으니 먹는 이도 드물다. 꿩고기가 눈에 띌 정도로 맛있다면 누군가가 꿩고기 전문 프랜차이즈라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없다. 전국에 숱한 닭고기 프랜차이즈 점포를 생각해보라.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닭 대신 꿩이 오히려 맞다.

왜 꿩 대신 닭인가? 간단하다. 예전에는 노동력은 흔했다. 산, 들에서 잡을 수 있는 꿩은 주인이 없다. 먼저 잡으면 임자다. 쉽게 말해 공짜다. 닭은 다르다. 산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닭을 잡지 않는 이상, 닭은 주인이 있다. 먹이를 주고 보살피는 이가 따로 있다. 임자 있는 닭을 잡으려면 ‘대금’을 치러야 한다. 돈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꿩 대신 닭”은 “공짜로 구할 수 있는 꿩 대신 아깝게 돈을 지불해야 하는 닭”이라는 뜻이다.


닭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가야의 김수로왕, 고구려 고주몽, 신라 건국주 박혁거세는 모두 난생설화를 가졌다.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닭인지, 꿩인지, 새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알’에서 태어났다. 경주에는 ‘계림(鷄林)’이 있다. 계림은 우리나라를 이르는 옛 이름이다. 경주 혹은 한반도를 계림이라고 불렀다. 역시 닭이다. 닭은 오래전부터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닭에 대한 묘한 혼동도 있다. 국어사전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닭개장’과 ‘닭계장’

질문: 닭고기를 육개장처럼 끓인 음식은 ‘닭개장’이 맞습니까? ‘닭계장’이 맞습니까?
답변: ‘닭개장’이 맞습니다. ‘닭개장’은 쇠고기 대신에 닭고기를 넣어 육개장처럼 끓인 음식을 이르는 말로 ‘닭’과 ‘개장’이 결합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닭계장’이라고 하는 것은 ‘닭 계(鷄)’를 연상하기 때문이지만 ‘육개장’과 관련이 있으므로 ‘닭계장’으로 적을 근거는 없습니다.
‘육개장’, ‘닭개장’의 ‘개장’은 ‘개장국’에서 온 말입니다. ‘개장국’은 개고기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음식인데 개고기 대신에 쇠고기를 넣은 것을 ‘육개장’이라고 하고 닭고기를 넣은 것을 ‘닭개장’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닭개장은 닭고기를 넣고 끓인 개장국 같은 음식이다. ‘닭+개장국’이 닭개장이다. 개 대신 닭이다. 꿩 대신 닭이 아니다. 닭은 늘 우리 가까이 있었다.
 
태종 18년(1418년) 5월. 어전회의가 있었다. 주제는 엉뚱하게도 죽은 4남 성녕대군에 관한 것이었다. 태종과 신하들은 희한한 문답을 주고받는다.
 

(전략) “소경공(昭頃公)이 평소에 쇠고기[牛肉]을 좋아하였으니, 삭망제(朔望祭)에 내가 이를 천신(薦新)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물건이 심히 크니 가볍게 쓸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혹은 연빈(燕賓)이 있거나 혹은 종묘(宗廟)에 제사할 때 이를 천신하는 것이 어떠할까 한다”. 여러 대언(代言)이 대답하기를, “옳습니다” 하니, 또 명하였다. “희생(犧牲)으로 계(雞)를 쓰는 것이 예(禮)에 있느냐?” 여러 대언이, “계(雞)는 ‘닭’을 말하는데, 희생에 계(雞)를 쓰는 것이 고례(古禮)입니다” 하니, 임금이, “소경공(昭頃公)이 또 닭고기[雞肉]를 좋아하였다” 하고, 즉시 본궁(本宮)의 사람에게 명하여 닭을 길러서 5일에 한 마리를 삶아서 천신하는 것으로써 항식(恒式)을 삼게 하였다.

 
연빈은 중국 측 사신, 즉, 명나라 사신이다. 봉제사접빈객이다. 조선왕조의 가장 큰 행사는 중국 사신 접대와 종묘 제사다. 이때나 ‘소경공의 제사에 고기를 쓰자’는 뜻이다. 평소엔 소 대신 닭이다.

태종은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절대군주다. 성녕대군은 태종의 넷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1418년 5월, 14살에 죽었다. 태종이 마흔 살 직전 정비 원경황후에게서 얻은 귀한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다고 한다. 원경왕후로서도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그 귀한 아들이 죽었는데 제사상에 쇠고기를 올리지 못한다. 왜 닭인가? 닭이 만만하기 때문이다. 개체가 작다. 한 마리라 해봐야, 고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도축도 쉽고, 기르기도 쉽다. 닭을 즐겨 사용한 이유다. 조선 후기, 주막에서는 오히려 닭이 부담된다. 많은 사람이 모인다. 매일 끓이는 국의 양도 만만치 않다. 닭을 쓰기에는 너무 번거롭다. 닭개장이 아니라 개장국을 끓인 이유다. 주막에서 닭을 피한 것은 닭고기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닭이 맛없다고? 억울하다.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18년간의 긴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 경기도 마현으로 돌아온다. 이 무렵 남긴 시에 닭고기가 등장한다. “다섯 집에서 닭 한 마리씩을 추렴하여, 연포탕을 끓였다”는 내용이다. 고향 마현과 가까운 철마산에서 젊은 후배들과 산중 파티를 연다. 당연히 음식을 장만한다. 메뉴는 ‘연포탕(軟泡湯)’이다.

연포탕은, 연한 두부, 연두부로 끓인 국이다. 조선 초기에는 두부에 새우젓국 정도를 넣은 간단한 것이었다. 두부갱(豆腐羹)이라고 했다. 두붓국이다. 후기로 가면서 연포탕은 화려해진다. 닭고기가 들어간다. 다산이 먹었던 연포탕은 제법 고급스러운 ‘프리미엄 연포탕’이다.

닭고기를 삶아서 작게 조각낸다. 두부를 주사위 모양으로 썬다. 띠풀에 꿴 두부와 닭고기를 닭고기 국물에 넣고 끓인다. 프리미엄 연포탕이다. 닭이 들어가서 프리미엄이 된다. ‘육수’는 새우젓국 국물에서 닭고기 국물로 화려해진다.

다산보다 앞 시대인 숙종 7년(1681) 6월, 영의정 김수항(1629∼1689년)이 희한한 탄핵을 한다. “평안도 지방으로 갔던 암행어사 목임일(1646년∼미상)이 지방의 ‘찰방(察訪)’ ‘적객(謫客)’들과 어울려 산의 절을 쏘다니며 연포회(軟泡會)를 열었다”는 것이다.

사실대로라면 큰 죄다. 찰방은, 역참을 관리하는 벼슬아치다. 공무 수행 중인 관리들을 보살피고, 말을 관리하는 기관의 벼슬아치다. 적객은 귀양객이다. 귀양살이 하는 사람들은 외부 출입이 통제된다.

암행어사는 비밀활동이 원칙이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암행어사가 역참의 관리, 귀양살이 중인 죄인과 버젓이 연포회(軟泡會)를 열었다. 연포회는 연포탕을 먹고 술을 마시며 노는 모임이다. 오늘날의 야외 파티다. 암행어사의 공개적인 연포회는 큰 죄다.
 

조선 후기에는 연포회가 대단한 파티로 주목받았다. 두부는 비교적 흔해졌지만, 닭고기는 그렇지 않았다. 다산이 집집마다 한 마리씩 다섯 마리 닭을 구한 것은, 닭고기 역시 귀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홍석모(1781∼1857년)가 쓴 “동국세시기”에는 연포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주사위 모양으로 썬 두부, 잘게 자른 닭고기, 띠풀에 꿰어서 지지고, 끓인다는 내용이다. “동국세시기”의 연포탕은 다산의 연포탕과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이다. 널리 퍼졌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에는 많은 이들이 연포탕을 즐겼다.

닭고기를 이야기하면 흔히 삼계탕을 떠올린다. 삼계탕은 우리 시대 음식이다. 조선 시대 인삼은 산삼이다. 재배 인삼은 조선 후기 등장한다. 그 이전에는 모두 자연삼, 산삼이었다. 귀한 산삼과 닭고기를 넣고 끓인 삼계탕은 없었다. 설혹 재배 인삼을 구해도 홍삼이거나 말린 건삼이었다. 재배 인삼을 날 것으로 넣고 끓이는 삼계탕은 인삼의 냉장, 냉동 유통이 가능한 이후의 음식이다.
닭도 전혀 다른 것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영계는 엉터리다. 영계는 ‘YOUNG+鷄’의 조어다. 엉터리다. 우리 닭은, 원래, 연계, 진계, 활계로 나누었다.

“일성록” 정조 24년(1800년) 5월의 기록이다.
 

대체로 진배(進排)하는 생계(生鷄)에는 모두 세 가지 명색(名色)이 있습니다. 여러 해 자란 닭을 진계(陳鷄)라고 하고 부화된 지 얼마 안 되는 것을 연계(軟鷄 영계)라고 하며 진계도 아니고 연계도 아닌 것을 활계(活鷄)라고 합니다. 무신년(1788) 이후로 여름철에 대신 바칠 때에는 연계를 진배하고 겨울철에 대신 봉진할 때에는 활계를 진배하며 혹 아래에서 대신 사용하는 경우에는 진계를 진배한 전례도 있습니다. (중략) 지금부터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막론하고 대신 봉진할 때에는 모두 활계로 봉진하고 혹시 하속(下屬)들이 정식을 따르지 않고 진계를 바치도록 요구하는 폐단이 있으면 (중략) 또 부득이 진계를 사용해야 할 경우가 있으면 진계 1마리를 활계 2마리로 쳐서 계산해 줄여 주라는 내용으로 정식을 정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늙은 닭, 진계는 적당히 자란 활계 2마리다. 진계, 늙은 닭이 낫다는 뜻이다. 부화한 후, 오래지 않은 닭은 연계다. 여름철이면 닭은 아직 자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여름에는 연계를 바친다. 그뿐이다. 어디에도 연계가 좋다는 표현은 없다. 진계가 가장 비싸다.

우리가 먹는 삼계탕은 아직 닭고기의 맛이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는 병아리 급의 닭 백숙일 뿐이다. 여기에 그마저도 어린 재배 인삼을 먹으면서 몸보신을 한다고 믿는다. 

 

필자 황광해는, 

경향신문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였으며, 현재 음식 칼럼니스트로 활약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한식을 위한 변명>, <고전에서 길어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 <한국맛집 57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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