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최영 (崔瑩)
1315(충숙왕 3)~1388(우왕 14), 고려의 명장이며 재상

 본관은 동주(東洲)이며, 왜구를 토벌한 공으로 우달치(于達赤)가 되었다. 1352년(공민왕 1) 조일신(趙日新)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이 커 대호군에 승진하였다. 원나라에서 고려에 원병을 청하자, 유탁(柳擢) 등 여러 장수와 함께 군사 2000명을 이끌고 원나라에 가서 적을 거의 전멸시키고 중국대륙에 용명을 떨쳤다. 또한 배원정책(排元政策)으로 원나라에 속했던 압록강서쪽의 8참(站)을 수복하였다. 1358년에는 오예포(吾乂浦)에 침입한 왜선 400척을 격파하였으며, 1359년 4만의 홍건적이 서경을 침략하자 이를 격퇴하였으며, 1361년 홍건적 10만이 침범하여 개경을 함락시키자, 이듬해 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이를 격퇴하여 개경을 수복하였다. 그 공으로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올랐다. 1363년 김용(金鏞)의 난을 평정하여 훈1등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다.


 1365년 강화도에서 왜구와 싸우던 중 신돈(辛旽)의 모함으로 계림윤(鷄林尹)에 좌천되고 훈작을 삭탈 당했다가, 1371년 신돈이 처형되자 복직되어 문하찬성사 등을 지냈다. 1374년에는 제주도 목호(牧胡)의 난을 평정하고, 1376년에는 삼남지방에 침범한 왜구를 홍산에서 격파하고, 이어서 이성계 등과 함께 왜구 격멸에 큰 공을 세워 철원부원군에 봉해졌다. 명(明)나라가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여 북변일대를 요동(遼東)에 귀속시키려 하자, 요동정벌 계획을 세워 팔도도통사가 되어 왕과 함께 명나라 정벌을 단행하였다.


 이성계 등의 위화도 회군으로 요동정벌은 좌절되고, 이성계의 반군과 개성에서 싸우다가 체포되어 참형(斬刑)되었다. 고려의 마지막 보루로써 신진세력 이성계의 군벌과 대결 고려를 지키려 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고려왕조는 종막을 고했다. 그는 고려의 가장 강용(剛勇)하고, 청렴결백했던 장군으로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시호는 무민(武愍).


[文獻] 高麗史, 高麗史節要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91
- 제작작가 : 우심 최대명
- 영정크기 : 세로130cm X 가로66cm
- 소 장 지 : 강릉 덕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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