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김대성 (金大城)
700(효소왕 10)~774(혜공왕 10), 신라의 대신

 이름을 대정(大正) 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재상을 지낸 문량(文亮)이다. 745년(경덕왕 4) 이찬(液)으로 중시가 되었으며 750년에 물러났다. 그 뒤 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공사를 주관 하였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한국민족문화의 가장 창의적인 문화유산의 정수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한국의 건축사나 조각사 조경사(造景史)에 있어서 그전에는 전혀 보지 못하던 새로운 계획의 구상과 시공의 창조물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의 조영에 있어서는 영감으로 펼쳐진 이상의 꿈을 현실로 나타낼 수 있는 천재적 기술이 숭고한 종교의 정신적 바탕위에 융합되어 이룩한 것이다. 불국사에 전개된 천상의 세계관이 기발한 조화의 조영 솜씨로 조성되어 있고, 석굴암의 깊고 밝은 명상의 세계가 생동하는 힘과 이상(理想)하는 꿈으로 조각되어 있다.


 김대성은 통일신라 황금문화시대의 위대한 건축가요 조각가이며 원력을 가진 종교인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김대성의 내력을 보면 「모량리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이마가 아주 넓어 성(城)과 같으므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 하였다. 대성은 불교신자로서 보시를 잘 하면 천신이 보호하고, 하나를 시주하면 만배를 얻어 안락하고 장수할 것이란 흥륜사스님 점개의 말을 듣고, 자기 집에서 경작하는 밭을 모두 법회(法會)에 시주하였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대정이 죽었다. 이날 밤 재상 김문량의 집에 하늘에서 부르짖음이 있기를 "모량리의 대성이가 지금 너의 집에 환생하리라" 하므로 집 안 사람들이 모량리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과연 대성이가 죽었다. 이로부터 김문량의 부민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가 왼 손안에 대성(大城)이란 두 글자를 새긴 금간자를 가지고 있어 이름을 대성이라 하였다. 대성이 장성하자 사냥을 좋아하여서 하루는 토함산에서 곰 한 마리를 잡고 산 밑 마을에서 잠을 자는데,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네가 나를 죽였으니 나도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하므로 대성이 용서를 빌자, 귀신이 나를 위해 절을 지어 달라하여 사냥하던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그리고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창건하고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석불사(석굴암)를 창건하였다」 한다.


[文獻] 三國史記, 三國遣事, 證壽永 石窟庵의 創建과 沿革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86
- 제작작가 : 김창락
- 영정크기 : 세로100cm X 가로80cm
- 소 장 지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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