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허균 (許筠)
허균은 광해군 8년(1616) 정2품 형조판서가 되었고 이듬해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등 대북파(大北派)의 일원으로 왕의 신임을 얻어 좌참찬으로 영전했다.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 허균(許筠,1569~1618)의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성옹(惺翁) 등이다. 허엽의 막내아들로 강릉시 사천에서 태어나 초당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노수신 등 재상과 장차 이름을 날리게 될 이순신, 유성룡, 원균이 살고 있는 건천동에서 살다가 1577년 8세 때 상곡(명례방)으로 이사를 갔다. 허균은 한 평생 강릉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1596년 강릉부사 정구와 함께 "강릉지" 엮었다.


 그는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 문과에 급제했고, 3년 뒤 문과 중시에 장원급제 하여 내외의 요직을 역임했다. 허균은 중국 사신으로 세 차례나 다녀왔다. 경포호 옆 누각에 중국에서 사온 4천여 권의 책과 자신의 책을 포함하여 무려 1만여 권을 보관한 사설도서관인 호서장서각(湖墅藏書閣)을 짓고 학자들을 모아 책을 보도록 하면서 학풍 진작에 기여 하였다. <을병조천록>은 허균이 광해군 때 사은사행(謝恩使行)의 부사로 명나라 수도였던 연경 지금의 북경에 2년간 머물면서 느꼈던 감흥을 한시 228편 382수로 지은 기행시집인데, 여기에 실린 시(詩)에서 옛 별장 강릉집 활짝 열린 곳(舊業江陵宅相開) 못가에 지은 여막 봉래산 옆이네 (結盧湖岸近蓬萊)라 하여 경포호수 옆의 초당을 말하고 있다. 명나라의 문인 오명제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시선(朝鮮詩選)은 현재 중국국가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이 책에는 선조33년(1600년) 신라시대 최치원, 백결, 고려시대 이규보, 정몽주, 조선시대 정도전, 허균, 허난설헌까지 모두 112명의 시 340수 중 난설헌 시 58수와 허균의 시 15수가 실려 있다. 책의 서문은 오명제, 후서는 허균이 썼다.


 그가 엮은 문집에는 문(文) 400여 편, 시(詩) 1,400여 편, 설(說) 300여 편이나 실려 있는데, 40세까지 지은 작품을 64권으로 편집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25권뿐이다. 허균은 광해군 8년(1616) 정2품 형조판서가 되었고 이듬해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등 대북파(大北派)의 일원으로 왕의 신임을 얻어 좌참찬으로 영전했다. 그러나 1618년 8월 남대문에 격문을 붙인 사건이 일어나고 허균의 심복 현응민(玄應旻)이 붙였다는 것이 탄로 나면서 그는 동지들과 함께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강릉시 난설헌로 193번길 1-16(초당동) 생가 터에 누이 허난설헌과 함께 영정을 봉안했다. 1999년부터 9월 (사)교산.난설헌선양회에서 추모행사와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2014년
- 제작 작가 : 동강 권오창
- 영정크기 : 102×180(가로×세로㎝표시)
- 소장지 및 소장인 : 오죽헌 · 박물관(강원도 강릉시),
- 영인본: 허난설헌생가터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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