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윤봉길 (尹奉吉)
1908~1932, 의사(義士)

 충남 예산(禮山) 출신. 어려서부터 사람됨이 준수하고 담력이 강했으며, 3.1 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적 분개를 느끼고, 식민지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자퇴하고, 서당에서 독학으로 공부하여 국사와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23세에 "장부는 뜻을 이루기전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굳은 결심으로 중국 청도(靑島)로 망명하였다.


 독립운동의 본거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서 김구(金九)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하였다. 1932년 김구로부터 폭탄을 받고,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과 겸하여 상해사변(上海事變) 전승기념식을 하는 홍구공원에 들어가 투폭(投爆)하고 "대한독립만세"를 큰소리로 식장이 떠나가도록 외쳤다. 이로 인하여 상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와 일본의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川) 대장 등이 죽었으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郎),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葵)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 역사적 쾌거를 장개석(蔣介石)은 "중국의 백만 군대가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의사가 능히 하였으니 장하고도 장한일이다" 하며 기뻐하였다. 이후 한, 중은 동맹국이 되고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침체되어있던 임시정부가 정상궤도에 올랐으며, 일제 신음에 시달리던 국내외 동포들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준 민족적인 쾌거였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오사카(大阪)로 이송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 :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다.


[文獻] 騎驢隨筆 , 武裝獨立運動秘史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78
- 제작작가 : 월전 장우성
- 영정크기 : 세로196cm X 가로127cm
- 소 장 지 : 예산 충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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