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문무왕 (文武王)
?~681(문무왕 21), 신라 제30대 왕

 이름은 법민(法敏),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맏아들. 어머니는 김유신(金庾信)의 누이인 문명왕후(文明王后) 김씨. 비(妃)는 파진찬 선품(善品)의 딸 자의왕후(慈儀王后)이다. 법민은 외모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며 지략(智略)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650년(진덕여왕 4) 왕명으로 당(唐)나라에 가서 대부경(大府卿)의 벼슬을 받았고, 654년(무열왕 1) 파진찬으로서 병부령(兵部令)이 되었다.


 655년에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660년(무열왕 7) 나, 당(羅唐)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김유신과 함께 5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분전, 백제를 격멸하였고, 661년 무열왕이 죽자 왕위에 올라 삼국통일의 유업을 계승하였다. 662년(문무왕 2)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쳤으나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당나라 군사가 전멸하여 실패하였고, 그 후 복신(福信), 도침(道琛) 등의 백제 부흥운동을 저지하였다. 668년(문무왕 8)에 재차 나, 당 연합군을 형성하여 고구려를 쳤는데, 왕제(王弟) 인문(人間)은 당나라의 이적(李勣)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평양성의 함락으로 고구려는 멸망하였으나,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땅은 물론 백제의 옛 땅까지도 자국 영토로 삼으려 하였으므로 문무왕은 김유신에게 명하여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게 하였다. 고구려 유민(遺民)의 부흥운동을 원조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나라에 대항하여 677년(문무왕 17) 그 세력을 몰아내고 대동강(大同江), 원산만(元山灣) 이남의 땅을 차지하는 삼국통일(三國統一)의 대업(大業)을 완수하였다.


 매우 불완전한 통일이기는 하였으나, 이 때부터 한반도(韓半島)에 단일 국가가 탄생하였다. 삼국 통일 후 문무왕은 국내 정치발전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당나라의 발전된 선진문화를 수입하는데도 힘을 기울여 664년(문무왕 4) 부인들의 의복을 당제(唐制)에 따르게 하고, 당악(唐樂)도 수입하였다. 674년(문무왕 14)에 당나라의 역술(曆術)을 본 따서 신력(新曆)을 제정하여 사용하였으며, 675년에 동인(銅印)을 만들어 중앙의 백관(百官)과 지방의 주군(州郡)에서 사용하도록 하였다. 676년에는 고승(高僧) 의상(義湘)으로 하여금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부석면(浮石面)에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게 하였다.


 대왕은 죽은 후에도 용이 되어 나라를 괴롭히는 왜군을 무찔러 나라를 지키겠다고 유언하고, 죽어서 화장된 후 경주시(慶州市) 감은사지(感恩寺址) 앞바다 동해대왕암(東海大王岩)에 안장(安葬)되었으며, 현재 그 유적은 발굴 정비되어 있다.


[文獻] 三國史記, 三國遺事, 世宗實錄地理志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77
- 제작작가 : 운보 김기창
- 영정제공 및 저작권자 : (재)운보문화재단
- 영정크기 : 세로181cm X 가로121cm
- 소 장 지 : 경주 통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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