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표준영정

태조 이성계 (太祖 李成桂)
1335~1408, 조선의 제1대 왕

 본관 전주(全州). 함경도 영흥(永興) 출신. 1356년(공민왕 5) 아버지와 함께 고려에 내부(來附) 한 뒤,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이 되었다. 1364년 원나라가 평안도에 침입하여 공민왕을 폐하려 하자 최영(崔瑩)과 함께 이들을 달천강(撻川江)에서 대파하였다. 1377년(우왕 3) 왜구(倭寇)가 개경을 위협하자 서강부원수(西江副元帥)로서 이를 격퇴하였다. 1380년 양광, 전라, 경상도도순찰사(楊廣全羅慶尙道都巡察使)가 되어 운봉(雲峰)에서 왜구를 소탕하고, 이지란(李之蘭)과 함께 함경도에 침입한 호바트[胡拔都]의 군대를 길주(吉州)에서 대파하였으며, 함경도 함주(咸州)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였다.


 1388년(우왕 14)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올라 최영과 함께 권신(權臣) 임견미(林堅味), 염흥방(廉興邦)을 처형, 이 때 명(明)나라의 철령위(鐵領衛) 설치 문제로 요동정벌이 결정되자 출정을 반대했으나 거절당했다.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가 되어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다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한 후 창왕(昌王)을 세웠으며 자신은 수시중(守侍中)으로서 도총중외제군사(都摠中外諸軍事)가 되어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였다.


 다음해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세웠다. 1391년 삼군도총제사(三軍都摠制使)로서 조준(趙浚) 등과 함께 구신(舊臣)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전제개혁(田制改革)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구신들은 경제적 기반을 잃었고, 그의 일파인 신진세력은 경제적인 토대를 구축하게 되었다. 1392년(공양왕 4) 정몽주(鄭夢周)를 제거, 그 해 7월에 공양왕을 양위시키고 스스로 새 왕조의 태조가 되었다.


 이듬해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정하고, 1394년(태조 3) 서울을 한양(漢陽)으로 옮겼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방과(芳果 ; 定宗)에게 선위한 뒤 상왕(上王)이 되고, 1400년 방원(芳遠)이 즉위하자 태상왕이 되었다. 1402년 왕자들의 권력다툼에서 빚어진 심뇌로 동북면에 가서 오랫동안 머물다가 돌아왔고, 불가(佛家)에 귀의하여 여생을 보냈다.


 사대주의(事大主義), 배불숭유(排佛崇儒), 농본주의(農本主義)를 건국이념으로 삼아 조선 500년의 근본 정책이 되게 하였고, 관제(官制)의 정비, 병제(兵制)와 전제(田制)의 재조정 등 국가초기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업적을 이룩하였다. 묘호(廟號)는 태조, 능은 건원릉(健元陵).


[文獻] 高麗史, 太祖實錄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86
- 제작작가 : 조중연
- 영정크기 : 세로218cm X 가로150cm
- 소 장 지 : 전주 경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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