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인물

빙월당 설총(氷月堂 薛聰)
? ~ ? /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의 학자
  • 문화관광부는 신라 문무왕 때의 문장가로서 경전을 우리말로 해석한 한국유학의 조종(祖宗)이며 동국 18현 중의 한 분인 설총(薛聰 : 7C)선생을 10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생애 및 업적
  •  설총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직전인 태종무열왕 때 고승 원효의 아들로 태어나 문무왕, 신문왕, 효소왕을 거쳐 성덕왕 때까지 활동한 유학자이다. 그는 삼국시대에서부터 수용하여 온 중국의 경학, 그 가운데서도 훈고학을 익히고 당나라 시대에 와서 하나로 통일된 유학(儒學)의 경전을 연구하여 우리말로 해석하고 경전의 한자에 훈고학적인 주석을 한 유학자였다. 그의 우리말 경전 해독은 석독구결을 지은 것인데 이것이 신라의 국학에서 교수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구결이 경전의 표준적인 해석이 되어 13세기까지도 명경(明經)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학습하여 내려왔다.


     설총은 이러한 업적으로 10세기까지는 '한림(翰林)'으로 불렸고 신라십현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11세기 초 현종 13년(1021)에는 홍유후(弘儒侯)로 추증되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고 한국의 유종(儒宗)으로 일컬어졌다. 설총의 석독구결은 경전에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 또는 말음첨기(末音添記)를 나타내는 토를 붙여 그 한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는 방법을 표시한 것이다. 이 토는 향찰과 이두 등 모든 차자표기법에 응용되어 우리말 표기법의 원천이 되었다. 이 구결의 보급으로 인하여 향찰, 이두, 구결의 발달을 가져왔고 이들은 우리 선인들의 문자 생활을 매우 풍요롭게 하여 우리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설총은 화왕계(풍왕서)와 같은 최초의 가전체 문학작품을 써서 유학의 정신으로 왕도(王道)를 펼 것을 완곡하게 말하였고 감산사아미타여래조상기에서는 유·불·선 삼교의 정신을 찬양하여 그의 학문의 폭이 넓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부친인 원효의 소상(塑像)을 만들어 분황사에 안치하는 효성을 보여 주기도 하는데 이는 설총이 관념적인 학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유학자였음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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